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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상림

함양상림
(咸陽上林)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천연기념물
종목천연기념물 (구)제154호
(1962년 12월 7일 지정)
소유공(함양군) 외
관리함양군
위치
함양 상림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함양 상림
함양 상림
주소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대덕리 246번지
좌표북위 35° 31′ 27″ 동경 127° 43′ 10″ / 북위 35.52417° 동경 127.71944°  / 35.52417; 127.71944
정보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함양 상림대한민국 경상남도 함양군에 있는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1962년 12월 3일 지정되었다. 상림의 면적은 약 21 헥타르(ha)이고 각종 수목 2만여 그루가 살고 있다. 전형적인 온대남부 낙엽활엽수림으로 잘 보존되고 있어 인공 숲으로서의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일명 대관림(大舘林), 선림(仙林)이라고도 하는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으로 400여 종의 수목이 있어서 식물학상으로도 좋은 연구 거리가 된다. 봄 꽃,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으로 예부터 유명한 곳이다.[1] 1,100여년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어 "천년의 숲"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공원 주변에 연꽃단지와 위천천의 맑은 물이 있어 년중 사시사철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공원이다.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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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最古), 최대 규모의 방풍방재 호안림으로,[2] 현대에는 풍치림으로서의 역할이 크다.[3]

당시에는 위천 강이 함양읍의 중앙을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홍수가 빈번하였다.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 강물을 돌리고 둑을 쌓고, 둑 옆에 나무를 싶어 가꾸었다고 한다.

이후 홍수로 중간 부분이 유실되어 상림과 하림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하림은 많이 훼손되었으나, 상림은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남아 있는 부분의 이름만을 따서 상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역민들뿐만 아니라 국내외 관광객이 두루 방문하는 생태공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함양상림과 대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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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상림의 조성에 관해서는 신라 진성여왕 때의 문인이자 관료인 최치원(崔致遠)이 천령군(天嶺郡)의 태수로 부임하고 있었을 때 조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세붕(1495~1554)의 ‘유청량산록‘에 “함양에 최치원이 태수 때 심은 숲이 10여 리를 이어졌는데 군민들이 비를 세우고 사실을 기록하였다”고 하여, 이미 15~16세기에는 함양 상림이 최치원이 조성한 숲이라는 전승이 퍼져 있었다. 최치원은 헌강왕 11년(885년) 입당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감사에 임명되었으나, 진골 귀족 중심의 폐쇄적인 골품제의 한계와 국정의 문란상에 외직을 자청하여 진성여왕 4년(890년) 대산군, 7년(893년) 부성군의 태수를 지내고, 진성여왕 8년(894년) 2월 시무 10여 조를 올려 아찬 관등을 받았다. 최치원이 천령군태수가 된 것은 아찬 관등을 받은 894년 이후의 일로 여겨지고 있다.

함양 학사루. 조선 시대까지 객관 서편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최치원이 천령군 태수 시절 올라가서 주위 경관을 감상하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조선 시대 문헌에서는 함양상림을 '대관림'(大館林)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함양군수를 지낸 김종직(金宗直)이 1474년 유호인(兪好仁)에게 보낸 시에서 "대관림 가운데서 술 불러다 마시는데/깊은 가을 초목들은 푸른 옥빛이 말끔하네"[4], 윤료가 작성한 함양군 지도 위에 쓴 아홉 수의 절구에 "때론 지팡이 짚고 돌아가는 학을 막기도 하는데/해 지자 대관림에 서리가 날리는구나"[5]라고 부른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함양군 산천조에도 대관림이 있었다는 언급과 함께 협주(夾註)로 '뇌계 동쪽에 있었다'는 기재가 있다. 이후 1832년 편찬된 《경상도읍지》와 1895년에 편찬된 《영남읍지》에 이르기까지 함양상림은 '대관림'으로 기재되어 있다.

대관림의 '대관'(大館)은 목사(牧使)나 군수(郡守) 및 현감(縣監)이 집무하는 관아를 가리키며, 최치원이 함양상림을 조성하였다는 전승에 견주어 최치원이 천령군태수(대관)로 부임하던 시절에 함양상림(대관림)이 조성되으리라고 보는 것에 더하여, 최치원이 해인사(海印寺)의 승려 희랑에게 보낸 시에서 자신을 '방로태감 천령군태수 알찬 최치원'[주 1]이라고 쓴 것, "희랑 대덕이 여름에 가야산 해인사에서 화엄경을 강의할 때, 나는 오랑캐를 막아내느라 청강할 수 없었다"[6]라는 대목에서 대관림이 단순히 가뭄과 홍수를 대비하는 목적뿐만 아니라 군사적인 목적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유추할 수 있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7][주 2]

최치원이 천령군태수로 임명되었던 진성여왕대는 9세기 전반에서 후반에 걸친 장기적인 이상기후 현상으로 인한 흉년과 기근, 홍수와 가뭄으로 각지에서 백성이 굶주리고, 민심이 흉흉한 상태에 조세까지 제대로 걷히지 않아 중앙의 재정이 고갈되고 지방에서는 조세 독촉을 견디다 못해 민란이 벌어지고 있던 시대였다. 최치원의 《해인사묘길상탑지》(895년)는 "전쟁과 흉년, 두 재앙이 서쪽에서는 멈추고 동쪽으로 왔다. 이보다 더 나쁠 수 없었고, 굶주려 죽고 싸우다 죽은 시체가 들판에 널브러져 있었다."고 표현하였다. 효공왕이 즉위한 뒤에 효공왕을 대신해 최치원이 작성한 사사위표에서는 "울며 청하기를 '천재(天災)가 행해지는 것은 땅의 본분으로 면하기 어려운 것이오라, 이를 자신의 허물로 삼음은 마땅한 일이 아니옵니다. 황제의 어명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 왕작을 사양하여도 늦지 않으리라'고 하였사옵니다."라고 하여, 효공왕의 발언을 빌어 흉년으로 인한 반란의 원인을 천재(천재지변)로 표현하였다.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는 시기에 최치원은 천령군태수가 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농민들과 함께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어 가뭄과 홍수에 대비하였을 것이고 그것이 함양상림이었으리라는 개연성이 성립된다.

1923년 최씨 문중에서 최치원이 천령군 태수로 있을 때 홍수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숲을 조성하였던 일과 민심을 위로하였던 공적을 기려 문창후최선생신도비를 세웠다. 1956년 편찬된 《함양군지》에도 그 전에 편찬된 군지의 산천편에 신라 때 최치원이 천령군태수 재직시에 나무를 심었다고 기록되어 있다.[10]

상림 안에서는 당산제가 이루어졌으며 2005년 구비문학 조사 때까지도 그 당산 터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상림에 대대들이라 하는 논에 건너가는 다리가 있었는데 그 옆에 당산제를 지내는 당산이 있었고, 병자년(1936년) 수파(홍수)에 그 주변이 싹 떠내려가고, 당산제를 모시는 곳만이 동그랗게 남아 있어서, 옛 노인들이 당산제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11] 이는 대관림에서 지속적으로 제의가 이루어졌음을 말해 주고 있다.[12]

2014년 3월 11일 함양상림공원에서 고운 최치원 선생 역사공원 조성사업 기공식이 개최되었다.[13] 함양군은 최치원을 함양을 대표하는 역사 인물로 기리고자 상림공원 인근에 고운 최치원 역사공원을 조성, 2018년 4월 준공을 목표로 공사를 진행하였으나, 준공식을 3개월 앞둔 시점까지도 전시물 등 내부 시설설치와 관련해서는 외부에 용역을 의뢰한 채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라는 언론의 지적을 듣기도 하였다.[14] 이후 공사계획은 2017년 12월에서 2018년 12월까지로 사업시행 기간이 변경되었고,[15]

상림과 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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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림이 '상림'과 '하림'으로 불리게 된 시기에 대해서는 분명히 밝혀진 것이 없다. 1938년 조선총독부 임업시험장에서 발행한 《조선의 임수》(朝鮮の林藪)에서 처음으로 대관림을 '상림'으로 병기하며 상림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16] 여기에는 상림에 대해 1923년 12월 수해 방비 보안림으로 편입되어 '위천 보안림'이라 불리고, 최근 읍민들이 '상림공원'이라고 부르는데, 늘 산책하는 휴양 장소로 이용되고 있었다고 하여,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대관림이 '상림공원'으로 불리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17]

《조선의 임수》의 저자인 도쿠미쓰 노부유키(德光宣之)는 하림에 대해 예전에는 대관림의 일부였던 것으로 '상림'에 대하여 '하림'이라고 칭한다고 하면서 1800년대에 '상림'과 '하림'으로 나뉘게 되지 않았나 하는 견해를 밝혔으나[18] 《경상도읍지》와 《영남읍지》에 대관림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과는 상치된다. 2005년 함양의 구비문학 조사에서 이신우(당시 79세)씨는 하림에 대해, "하림은 떠 내려 가고 없는데 요번에 다시 하림을 하지요. 솔밭을 조성합니다. 수파(홍수)로 인해서 그 뒤에 또 떠 내려갔습니다. 떠 내려가고 뭐, 비행장을 만들고 군이 주둔을 하다가, 현재 나무를 숨궈서 솔밭을 이룹니다. 지금 조성 중입니다."[19]라고 제보하였다. 함양읍의 원로의 제보에 따르면 1936년 홍수로 함양읍이 커다란 피해를 보았는데, 함양 읍내에 물이 들어와서 장독이 떠다닐 정도였고, 특히 하림 쪽의 피해가 커서 하천 둑이 무너지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하림 쪽의 나무도 땅도 다 떠내려갔고 홍수 이후 하림 빈터에는 비행장이 들어서고 군부대가 주둔하게 되었다고 한다.[20]

이를 통해 1936년의 병자년 대홍수로 대관림이 상하로 완전히 분리되면서 '상림'과 '하림'으로 불리게 되었고, 1938년에 발행된 《조선의 임수》에서 처음으로 그와 같은 기재를 하게 된 것이다. 이후 상림은 2005년 상림공원으로 복원이 완료되어 생태공원이 되었고, 하림은 2009년 하림공원으로 복원하여 자생식물원을 표방하게 되었다. 하지만 상림에는 많은 인공구조물들이 들어서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제대로 즐길 수 없고, 하림은 '함양 토속 어류 생태관', '함양 곤충생태관', '생태교육장' 등 건물이 들어서 있는 데다 제대로 운영도 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어 오히려 자연 생태계를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21] [주 3]

2024년 함양군은 옛 대관림(상림~하림) 구간의 도시생태축 복원을 위한 후보지 발굴 용역을 위하여 경상남도환경재단과 업무협약 체결을 추진하였으며, 2024년 10월 3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두 달 동안 옛 대관림(상림~하림) 구간의 도시생태축 복원 후보지 발굴 용역을 위한 업무협약 체결을 추진하였다.[23]

2025년 2월 21일 함양군청 소회의실에서 진병영 군수를 비롯한 관련 부서 간부 공무원 등 1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상림~하림 연결하는 도시 생태축 복원사업 후보지 발굴용역 및 공모계획 보고회’를 개최했다.[24] 함양군은 위천과 그 주변 지역의 생태계 현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하여 신라 시대에 조성된 대관림 복원 방안을 모색하고자 환경부 공모사업인 도시생태축 복원사업 추진에 나섰다고 밝혔다.[25]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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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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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관대감은 중앙 군관직으로 진흥왕대에 설치되었으며, 진골은 사지부터 아찬, 육두품은 나마부터 사충아찬 관등을 지닌 자가 임명되었다.
  2. 산림늪지는 군사적으로 군인과 군사시설의 은폐물과 방호림 역할을 하며[8] 고대 중국에서도 이미 국도의 경계에 도랑을 파고 나무를 심어 견고하게 하는 등[9] 식수(植樹)를 성곽의 해자를 방호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한 사례가 존재한다.
  3. 함양군 주민 박종달씨(68) 제보에 의하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하림공원을 조성할 때 상림과 하림을 연결하여 대관림을 복원하려 하였으나 여러 가지 문제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고 한다.[22]

출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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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巡廻探訪 (四十九) 咸陽地方大觀<3>”. 동아일보. 1926년 8월 19일. 咸陽은 原來 名勝古跡이 이만키로 有名한 곳이다. 이제 그의 大槪를 紹介하면 數十個所의 多數에 達하겟스나 紙面上 不得已 爲先 著名한 幾個處를 記錄하여 보려 한다. 上林 一名은 大舘林이라고도 하고 또 別稱 仙林이라고도 하는 바 咸陽 邑北의 約二町을 距하야잇다. 往昔 新羅 名士 崔孤雲 先生게서 本郡에 在任할 時 水害를 防止키爲하야 植樹한 바인데 四百餘種의 樹木이 잇서 植物學上에 好材料가 될 뿐 아니라 處處에 林立한 巨木老樹가 十里에 亘하야 渭水를 前敵으로 長堤에 當臨하엿으니 春의 花와 夏의 濃陰과 秋의 丹楓은 實로 別區勝景이라 賞嘆치 안할 수 업다. 그럼으로 探勝客으로는 願一見之를 부러짓지 안는 者없스며 何時를 勿論하고 詩人騷客과 才子佳人이 連續不絶하야 常時人海를 보인다. 
  2. 김정기 '함양 상림 숲의 역사적 의의' 《석당논총》61,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5, 335쪽
  3.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문화재대관》천연기념물편, 1973, 160쪽
  4. 김종직 저, 임정기 역 《국역 점필재집》1, 민족문화추진회, 1996, 361쪽
  5. 김종직 저, 임정기 역, 위의 책, 290쪽
  6. 《가야산해인사고적》
  7. 최광식, '상림(上林)과 대관림(大館林)'《역사민속학》68, 2025, 160쪽
  8. 최덕경 《중국 고대 산림보호와 환경생태사 연구》2019, 161쪽
  9. 《주례》 하관
  10. 김재현 《함양군지》 함양향교, 1956, 80쪽
  11. 정윤식씨 제보(당시 63세)(박종섭 편 《함양의 구비문학》1, 함양군, 2014, 26쪽)
  12. 최광식, 앞의 논문, 2025, 164쪽
  13. “최치원 선생의 업적, 상림공원에 기린다-함양군, 고운 최치원 선생 역사공원 조성”. 《함양인터넷뉴스》. 2014년 3월 11일. 
  14. “최치원 역사공원 겉만 화려하고 속은 비었다”. 《함양뉴스》. 2018년 1월 15일. 
  15. “군계획시설사업 실시계획 인가(변경)를 위한 공람, 공고”. 《함양뉴스》. 2018년 2월 28일. 
  16. 도쿠미쓰 노부유키(德光宣之)《조선의 임수》(朝鮮の林藪), 조선총독부 임업시험장, 1938, 89쪽
  17. 최광식, 앞의 논문, 2025, 164~165쪽
  18. (사)생명의숲국민운동 《역주 조선의 임수》지오북, 2007, 232쪽
  19. 박종섭 《함양의 구비문학》1, 함양군, 2014, 29~30쪽.
  20. 최재길 《생명의 숲 함양 상림》수문출판사, 2023, 67~68쪽.
  21. 최광식, 앞의 논문, 2025, 166쪽
  22. 최광식, 앞의 논문, 2025, 165~166쪽
  23. “함양군, 상림-하림 잇는 도시생태축 복원한다”. 《함양인터넷뉴스》. 2024년 11월 4일. 
  24. “군청뉴스-함양군, 도시 생태축 복원사업 후보지 발굴용역 및 공모 보고회”. 《함양군청》. 2025년 2월 21일. 
  25. “군, 도시생태축 복원 추진... 신라시대 '대관림' 복원 모색”. 《함양뉴스》. 2025년 3월 24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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