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최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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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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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
| 시호 | 제정(齊貞) |
| 신상정보 | |
| 출생일 | 미상 |
| 출생지 | 미상 |
| 사망일 | 1422년 |
| 사망지 | 미상 |
| 국적 | 조선 |
| 성별 | 남성 |
최용소(崔龍蘇, ?~1422년)는 여말선초의 문신이다.
생애
[편집]공민왕 초에 의릉직(毅陵直)에 제수되고 공조전서 등을 지냈으며, 조선 건국 이후에는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 강원도도관찰사, 3군 도진무(都鎭撫), 검교참찬문하부사(檢校參贊門下府事), 승녕부윤(承寧府尹), 좌군총제(左軍總制)에 개수(改授), 안동부사·개성부유후, 공조판서 등을 지냈다.
1394년에는 일본에 파견되어 이미카와(令州了俊)에게 왜구를 토벌하여 양국의 우호를 도모하자는 국서를 보낸 뒤 피로인 570여 명과 귀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