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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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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학파(ἡ σχολὴ τῆς Ἀλεξανδρείας, Alexandrian school)는 이집트의 수도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문학, 철학, 의학, 그리고 헬레니즘과 로마제국 시대 학문의 통합적인 학파다. 보통 기독교 신학 전통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한다.[1] 이와 반대되는 역사적 문법적 방법을 강조한 안디옥 학파가 있다. 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와 오리엔트 영향을 흡수해서 학문으로 유명한 중심지가 되었다.

이 학파는 주로 181-451년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준 학파다. 알렉산드리아에는 필론이 살았는데 기독교 신학의 방법과 해석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필론은 특별히 플라톤의 철학을 창세기를 비롯한 그의 성경해석에 적용하였다. 이 학파는 그리스도론에 관한 주장에서 성부성자동일본질을 주장한 삼위일체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성경해석에서는 알레고리적 해석에 강조점을 두었다.

주요 신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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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학자가 바로 오리겐이었다.[2] 이 학파가 세운 학교가 알렉산드리아 교리학교다.

  • 판타이노스 (Pantaenus, 2세기 후반): 알렉산드리아 교리학교의 초대 교장 중 한 명으로 여겨졌다.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Clement of Alexandria, 약 150년 ~ 약 215년): 초기 기독교의 주요 변증가이자 신학자로, 신앙과 이성(철학)의 조화를 추구했다.
  • 오리게네스 (Origen, 약 185년 ~ 약 254년):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성경 해석(우의적 해석)과 신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 대(大) 디오니시오스 (Dionysius the Great, ? ~ 264년경): 오리게네스의 제자이자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다.
  •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오스 (Athanasius of Alexandria, 약 296년 ~ 373년): 아리우스주의에 반대하며 니케아 공의회의 신조를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교부다.
  • 맹인 디디모스 (Didymus the Blind, 약 310년 ~ 395년): 알렉산드리아 교리학교의 교장이었으며, 오리게네스 신학을 계승했다.
  •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 (Cyril of Alexandria, 약 376년 ~ 444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네스토리우스주의에 반대하며 기독론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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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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