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영국 관계
아일랜드 |
영국 |
|---|---|
| 외교 공관 | |
| 주영국 아일랜드 대사관 | 주아일랜드 영국 대사관 |
아일랜드-영국 관계(영어: Ireland-United Kingdom Relations)는 아일랜드와 영국 간 양자 관계를 의미한다. 두 국가는 OECD, 유엔, 유럽 평의회, 유럽 안보 협력 기구 등에서 협력하고 있다.
상세
[편집]로마 제국 시절, 영국은 켈트족이 사는 브리타니아로 로마의 속주였으나, 아일랜드는 픽트인들이 사는 히베르니아라고 불리던, 로마 제국의 영향력 밖에 있는 지역이었다.[1][2]
중세 시절 영국은 아일랜드와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등 4개의 왕국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다 16세기 영국은 아일랜드를 침공하였으며, 1801년에 이르려 아일랜드에 대한 점령을 완료하였다. 영국은 아일랜드의 독립 전까지 약 800년 동안 아일랜드를 지배하였다.[3][4]
19세기에 발생한 아일랜드 대기근은 아일랜드의 뿌리 깊은 반영 감정을 갖게 하는데 일조하였다.[5] 감자역병균과 더불어, 아일랜드의 영국인 지주들의 착취는 아일랜드로 하여금 독립에 대한 열망과, 아일랜드 디아스포라가 발생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6][7] 이는 미국 내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이 자리잡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아일랜드의 독립
[편집]아일랜드는 영국의 지배 이후 꾸준하게 독립을 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얼핏 두 나라는 비슷하게 보이나, 민족과 종교 모두 조금씩 다르다. 아일랜드는 신페인 당 창설을 통해서 정치적인 움직임을 보였으며[8], 아일랜드 독립 전쟁을 하였다. 전쟁 이후 영국-아일랜드 조약을 통해서 아일랜드는 독립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얼스터 등 북아일랜드가 영국의 일부로 남게 되면서 북아일랜드 분쟁이라는 문제를 낳았다.[9][10]
북아일랜드 문제
[편집]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있었던 아일랜드 공화국군 임시파와 얼스터 의용군 간 갈등과 폭력 사태는 테러로 인한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초래하였다. 1998년 벨파스트 협정을 통해서 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하였다.[11][12]
브렉시트 이후 아일랜드는 비유럽 연합 회원국과 국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Jasiński, Jakub. “Hibernia - what did ancient Romans know about "Green Island?" « IMPERIUM ROMANUM” (미국 영어). 2025년 9월 5일에 확인함.
- ↑ World, SPQR | Ancient Rome and the Ancient (2025년 5월 5일). “Why Didn’t the Romans Conquer Ireland?” (영어). 2025년 9월 5일에 확인함.
- ↑ “A Report From Ireland, 800 Years After the British Arrived (Published 1973)” (영어). 1973년 12월 16일. 2025년 9월 5일에 확인함.
- ↑ “800 years of myths” (영어). 2025년 9월 5일에 확인함.
- ↑ Editors, HISTORY com (2017년 10월 17일). “Irish Potato Famine: Date, Cause & Great Hunger” (영어). 2025년 9월 5일에 확인함.
- ↑ “The great famine” (영어). 2025년 9월 5일에 확인함.
- ↑ “Learn About the Great Hunger at Ireland's Great Hunger Museum” (영어). 2025년 9월 5일에 확인함.
- ↑ “Irish Unity - Sinn Féin” (미국 영어). 《Sinn Féin》. 2025년 9월 5일에 확인함.
- ↑ “남자는 왜 손가락을 잘랐나…역사가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 2023년 7월 29일. 2025년 9월 5일에 확인함.
- ↑ “영-EU ‘북아일랜드 신경전’ 종료의 의미”. 2023년 5월 5일. 2025년 9월 5일에 확인함.
- ↑ 이제훈 (2022년 11월 12일). “‘한반도 판박이’ 아일랜드섬…벨파스트평화협정 24년 ‘빛과 그림자’”. 2025년 9월 5일에 확인함.
- ↑ 어린이조선일보 (2025년 2월 10일). “[역사 속의 오늘] '아일랜드 자유국' 수립(1922.12.6)”. 2025년 9월 5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편집]- Boyce, David George. The Irish question and British politics, 1868–1986 (Macmillan International Higher Education, 1988).
- Cauvet, Philippe. "‘It’s not just the economy, stupid!’ Brexit, the Good Friday Agreement and the Irish border conundrum." Observatoire de la société britannique 24 (2019): 105-118. online in English
- Doyle, John, and Eileen Connolly. "The Effects of Brexit on the Good Friday Agreement and the Northern Ireland Peace Process." in Peace, Security and Defence Cooperation in Post-Brexit Europe (Springer, Cham, 2019) pp. 79–95.
- Edwards, Aaron, and Cillian McGrattan. The Northern Ireland conflict: a beginner's guide (Simon and Schuster, 2012).
- Hammond, John L. Gladstone and the Irish nation (1938) online.
- McLoughlin, P. J. "British–Irish relations and the Northern Ireland peace process: the importance of intergovernmentalism." in Dynamics of Political Change in Ireland (Routledge, 2016) pp. 103–118.
- Mansergh, Nicholas. The Irish Question 1840–1921 (3rd ed 1965) online
- Murphy, Mary C. "The Brexit crisis, Ireland and British–Irish relations: Europeanisation and/or de-Europeanisation?." Irish Political Studies 34.4 (2019): 530-550.
- O'Kane, Eamonn. Britain, Ireland and Northern Ireland since 1980: the totality of relationships (Routledge,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