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수
보이기
남원수(南元壽, 1911년 7월 8일 ~ ?)는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자 대한민국의 공무원, 정치인이다. 일제 강점기에 보통문관시험에 합격, 해방 후 횡성군청 내무과장, 산업과장을 거쳐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강원도 정선군수, 삼척군수, 강원도청 문교사회국 사회과 사무관, 홍천군수, 영월군수, 원주군수, 평창군수, 양양군수 등을 역임했다.
명주군수 재직 중 1958년 국회의원 선거에 울진군 예비후보자로 자유당 공천 신청을 했으나, 공천에서 탈락했다. 1960년 4.19 혁명 직후, 4월 29일 군수직에서 사퇴하라는 양양중학교, 양양여자중학교, 양양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의 요구에 사직을 약속하고[1], 그해 5월 24일 의원면직했다.
경력
[편집]-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희망리 출신이고, 본적지는 경상북도 울진군이다.
- 보통문관시험 합격
- 1945년 강원도 횡성군청 내무과장
- 횡성군청 산업과장
- 1949-05-03 ~ 1950-09-23 강원도 정선군수
- 51.1 ~ 53.10.24 강원도 삼척군수
- 1953년 강원도청 문교사회국 사회과 과장(課長), 사무관(事務官)
- 1954.10.18 ~ 1955.08.07 강원도 홍천군수
- 1955.08.08~1956.09.17 강원도 영월군수
- 1956년 9월 18일 지방행정사무관, 강원도 서무과장(江原道 庶務課長)[2][3][4]
- 1957.04.24~1958.03.19 강원도 명주군수
- 1958년 2월 국회의원 총선거에 자유당으로 울진군 공천신청[5][6][7], 국회의원 선거 울진군지구 예비후보자
- 자유당 공천 탈락
- 1958.03.15 ~ 1959.01 강원도 원주군수
- 59.1.13 ~ 59.8.25 강원도 평창군수
- 1959. 7. 25 ~ 1960. 5. 23 강원도 양양군수
- 1960년 5월 24일 의원면직[8]
수상 경력
[편집]각주
[편집]참고 문헌
[편집]- 건국십년지간행회, 《대한민국 건국 10년지》 (건국십년지간행회, 1956)
- 《대한민국 직원록 (1953)》
- 合同通信社, 《合同年鑑》 (合同通信社, 1959) 543페이지
- 大韓年鑑社, 《大韓年鑑 1958》 (大韓年鑑社, 1958) 431페이지
외부 링크
[편집]
| 이 글은 한국 사람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으로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 |
| 이 글은 정치인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으로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