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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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餘蔚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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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연의 산기시랑 | |
신상정보 | |
국적 | 후연 |
직업 | 태부(太傅) |
여울(餘蔚, 생몰년 미상)은 오호 십육국 시대 전연과 후연에서 활동한 부여계 유민으로 전연에서 벼슬하다가, 전진에게 항복해 전연 멸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모용수가 후연을 건국하자 그의 휘하에 들어가 측근으로 활동했다.
생애
[편집]여울은 전연에서 활동하며 산기시랑(散騎侍郞)이란 벼슬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370년 11월에 전진이 침공하자 부여·고구려·상당 일대에서 끌려온 500여 명의 질자(質子)와 함께 수도 업의 북문을 열고 항복했다.[1] 한편 모용수가 384년 전진에서 독립해 후연을 건국했고 여울을 포섭해 형양태수(滎陽太守)로 삼았으며, 곧 정동장군(征東將軍) 통부좌사마(統府左司馬)로 삼았고 부여왕에 봉했다.[2] 390년에 우광록대부(右光祿大夫)를 거쳐 좌복야가 됐고 396년 5월에 태부(太傅)로 삼았다.[3] 이후 기록은 없다.
각주
[편집]- ↑ 사마광. 〈태원(太元) 5년(380년) 11월〉. 《資治通鑑》 [자치통감]. 권제102 진기(晉紀)제24 해서공(海西公) 하(下).
- ↑ 사마광. 〈태원(太元) 9년(384년) 정월〉. 《資治通鑑》 [자치통감]. 권제105 진기(晉紀)제27 열종효무황제(烈宗孝武皇帝) 상지상(上之上).
- ↑ 사마광. 〈태원(太元) 21년(396년) 5월〉. 《資治通鑑》 [자치통감]. 권제108 진기(晉紀)제30 열종효무황제(烈宗孝武皇帝) 하(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