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공손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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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견: 14년 전 (威光님) - 주제: 공손찬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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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찬의 자
널리 알려진 바로는 공손찬의 자가 백규(伯珪)라고 합니다.
한편 185년에 《태위유관비(太尉劉寬碑)》가 건립되었는데, 여기에 공손찬이 참여한 사실이 보입니다.
"탁령, 요서군 영지현 사람 공손찬 백규(伯圭), 1000전 기탁함."
공손찬이 참여한 이 비석에 따르면, 珪가 아니라 圭입니다.
그렇다고 당시에는 珪 대신 圭만 쓴 것일까... 하고 생각하자니, 비문에 적힌 인물들 중에는 자로 珪를 쓴 인물도 있습니다. 즉, 圭만 존재했던 것도 아닐뿐더러 공손찬 자신이 직접 圭를 쓴 것이라고 못박아둔 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응소(應劭)의 자도 이 비문에 따라 중원(仲遠)을 중원(仲瑗)으로 고쳤으며, 仲瑗의 경우 이미 학자들이 瑗이 옳다고 논거한 바가 있습니다.
아무리 역사서가 정밀하게 작성됐다 하더라도, 사서 속 당사자의 흔적이 직접적으로 보이는 비문만큼은 정확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伯圭를 본문에 적고, 그 출전과 함께 伯珪라는 표기는 주석으로 달아놓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합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威光 (토론) 2011년 1월 10일 (월) 12:12 (KST)
- 기존에 알려진 자(伯珪)와 다른 자(伯圭)가 발견되었다면 그에 대한 관련 학자 (또는 전문가)들의 논의가 있을 듯 한데, 그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을까요? --BIGRULE (토론) 2011년 1월 16일 (일) 02:15 (KST)
- 일단은 1차 사료(비문)가 2차 사료(삼국지)보다는 우선할 것 같습니다만, 홀이란 뜻으로는 圭와 珪가 통해서, 같은 것에 대한 다른 표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1년 1월 16일 (일) 11:51 (KST)
- 학자의 논의로는, 혜동(惠棟)이 공손찬전 주석에 언급한 사례가 있습니다. 또한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圭와 珪가 통하긴 하지만 엄연히 선택하여 썼음을 알 수 있는 것이... 유관비 건립에 참여한 사람 중에는 자로 圭가 아닌 珪를 쓴 사람이 공존합니다(누군지 기억이 안 나네요 -_-;;). 제 생각에는 후대의 학자(진수...)가 기록을 할 때, 圭와 珪가 자의도 같은데다가 珪의 경우 瓚과 부수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혼동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威光 (토론) 2011년 1월 16일 (일) 12:25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