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공손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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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견: 14년 전 (威光님) - 주제: 공손찬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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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찬의 자
널리 알려진 바로는 공손찬의 자가 백규(伯珪)라고 합니다.
한편 185년에 《태위유관비(太尉劉寬碑)》가 건립되었는데, 여기에 공손찬이 참여한 사실이 보입니다.
"탁령, 요서군 영지현 사람 공손찬 백규(伯圭), 1000전 기탁함."
공손찬이 참여한 이 비석에 따르면, 珪가 아니라 圭입니다.
그렇다고 당시에는 珪 대신 圭만 쓴 것일까... 하고 생각하자니, 비문에 적힌 인물들 중에는 자로 珪를 쓴 인물도 있습니다. 즉, 어느 圭만 존재했던 것도 아닐뿐더러 공손찬 자신이 직접 圭를 쓴 것이라고 못박아둔 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아무리 역사서가 정밀하게 작성됐다 하더라도, 사서 속 당사자의 흔적이 직접적으로 보이는 비문만큼은 정확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伯圭를 본문에 적고, 그 출전과 함께 伯珪라는 표기는 주석으로 달아놓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합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威光 (토론) 2011년 1월 10일 (월) 12:12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