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환단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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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 vs 진서
@빠라바라바라밤, Ddxfx, Kkkk8901, Regurus: 문서에서 되돌리기가 3회 이상 발생하는 경우 편집 분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문서의 되돌리기가 너무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 편집 요약으로 대화를 진행하는 형국인데 나중에 이 문서를 편집할 사람들을 위해 토론창에서 대화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현대 한국의 주류 역사학계가 환단학회에 비해 더 더 신뢰할만 한 점, 환단고기를 위서로 규정하는 것이 학계의 주류 이론인 점을 들어 환단고기는 위서라는 표현을 삭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환단고기가 진서라는 주장을 무시하자는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런 주장의 경우 비중에 맞게 서술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대화 이어가시길 바랍니다.――사도바울 《☎|✎|X》 2020년 12월 14일 (월) 09:50 (KST)
- 환단고기는 위서라 생각굅니다. 물론 당사자는 아니지만 한국사능력 검정시험등 공인된곳에서 환단고기를 출처 삼지 않습니다.--Y.S. (토론, 위치 추적) 2020년 12월 14일 (월) 09:52 (KST)
- @사도바울:알겠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저도 사도바울님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저는 빠라바라바라밤 사용자의 기여는 위서론의 주장 부분을 진서론으로 교묘하게 훼손하고 있기에 문서 훼손으로 보아야 하고, 지나치게 비중립적이며 비주류 이론의 비중을 지나치게 늘리는 기여이기 때문에 되돌려 져야만 한다고 봅니다. Regurus (토/기) 2020년 12월 14일 (월) 09:58 (KST)
- "위키백과의 문서에서 비주류 이론을 다룰 때에는 그 학설이 갖는 실제 비중보다 더 저명한 것처럼 보이게 쓰면 안 됩니다." 라는 지침에 따라, 사도바울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참고로 저는 그냥 숙련된 사용자 분들이 되돌리셔서 그 판으로 되돌린 것이고, 이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𝖣𝖽𝗑𝖿𝗑 2020년 12월 14일 (월) 10:39 (KST)
- "환국 유물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일단 위서가 맞습니다.--kkkk8901 2020년 12월 14일 (월) 14:30 (KST)
- 환단고기는 진서라 생각합니다. 이유립 개인의 1970년대 이후 창작물이라고 줄곧 환단고기 위서론 운운하던 자들의 주장은 거짓임이 드러났습니다. 1909년 추정 등사본 '환단고기'를 공개한 운룡도서관 이명우 이사장의 논문 <'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님을 입증하는 사료의 고찰>에 그 자세한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성광일보, 2020.01.02.]역사폴리매스 (토론)
- @역사폴리매스:
국문 초록
현재 『환단고기桓檀古記』는 재야사학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특별한 역사서歷史書로 관심을 갖고 있다. 『환단고기』는 1911년 계연수에 의하여 안함로 安含老의 『삼성기 전 상편』, 원동중元董仲의 『삼성기 전 하편』, 이암李嵒의 『단군세기』, 범장范樟의 『북부여기』, 이맥李陌이 저술한 『태백일사』를 합본하여 출간한 역사서이다.
계연수의 제자 이유립이 보관하여 갖고 있던 원본 『환단고기』를 1949년 제자 오형기에게 정서精書시킨 것을 조병윤이 1979년에 ‘광오이해사’ 를 통하여 필사본 『환단고기』를 출판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본 연구 논문에서는 『환단고기』의 편찬과 전래 과정을 검토하고, 『환단고기』가 위서僞書라고 주장하는 강단사학계 일부 역사학자의 논문과 출판된 저서들의 내용들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청나라 이후 사용된 근대 용어라고 지목하는 『환단고기』에 기재된 특정 지명(예: 영고탑, 문화, 문명 등)과 역사 기술 사항 등이 위서론자들이 주장하는 사용 시기보다 더 오래전에 사용된 증거들을 찾았다. 또한, 『환단고기』에 있는 역사적 내용과 지명 등이 현재까지 잘 알려 지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이전에 출판되어 현존하는 역사서와 해방 후 발굴된 유물 등과 대조하여 진위를 확인한 결과 『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님을 증명하였다.
특히, 조인성 등 위서론자들이 1911년 계연수에 의하여 편찬된 『환단고기』의 원본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해방 후에 만들어진 위서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이 허위임을 증명해주는 ‘등사본’ 『환단고기』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이 등사본 『환단고기』는 「삼성열기三聖列記」, 「단군세기」, 「북부여기」 상, 하만 수록되어 있다. 1979년 광오이해사 출판 『환단고기』「삼성기 전 상」과 『등사본 환단고기』「삼성열기」의 원문을 비교해볼 때 문장의 일부분이 다른 부분이 있다. 『환단고기』「삼성기전 상」은 「삼성열기」의 원문 내용과 비교해볼 때 90% 정도는 같지만 나머지 약 10% 정도 차이가 있다. 「단군세기」, 「북부여기」 상, 하에도 일부분이 수정, 추가 또는 삭제되어 차이를 보이고 있다.
등사본 『환단고기』는 한문 문장에 한글 현토가 달려 있고, 「삼성열기」를 보면 문장 끝에 “李沂註曰. --”이란 주해註解가 기재되어 있어 광오이해사본 『환단고기』와 다르다. 이는 이유립이 아닌 제삼자가 소장했던『환단고기』혹은 그 저본을 보고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어쩌면 등사본『환단고기』는 1911년 계연수가 편찬한 『환단고기』의 저본일 수도 있다고 추론하였다. 따라서 등사본『환단고기』의 존재는 기존의 광오이해사본 혹은 배달의숙본『환단고기』가 1911년 계연수에 의하여 편찬된 원본이 실재하였음을 입증하는 증거라 할 수 있다.
『환단고기』는 과거에 망실된 우리 고대사를 복원하는데 중요한 역사서라고 판단되며, 위서론-진서론의 논쟁을 종식하고 다함께 『환단고기』를 있는 그대로 연구함으로써 우리나라 고대사에 왜곡되거나 부정확한 역사를 바로 잡아 역사 발전에 기여할 것을 제안한다.
- 해당 논문의 초록입니다. 볼드체 된 부분을 보시면, 단순 추측과 "짐작"만으로부터 "등사본『환단고기』의 존재는 기존의 광오이해사본 혹은 배달의숙본『환단고기』가 1911년 계연수에 의하여 편찬된 원본이 실재하였음을 입증하는 증거라 할 수 있다."라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해당 논문의 발행기관이 "세계환단학회"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𝖣𝖽𝗑𝖿𝗑 2020년 12월 20일 (일) 23:45 (KST)
- 누가봐도 환단고기는 구라이므로 더이상 토론을 진행하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보호 요청 넣었으니 우리는 토론에 참여하지 말고 문서 훼손을 되돌리기만 합시다. GTX1060 (토론) 2020년 12월 20일 (일) 18:31 (KST)
- 그래도 무작정 문서 훼손으로 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𝖣𝖽𝗑𝖿𝗑 2020년 12월 20일 (일) 23:45 (KST)
- 환국의 유물도 발견되지 않았고 수명도 비현실적이라서 위서가 맞습니다 아니라고 하다면 환단고기에서 환국 군주 평균수명이 400년이상이란 것을 어떻게 설명하며 또한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를 어떻게 다스렸으며 또는 환국 유물이 있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결론:환단고기는 위서입니다.--kkkk8901 2020년 12월 21일 (월) 03:11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