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S. 트루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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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S. 트루먼
Harry S. Truman | |
|---|---|
해리 S. 트루먼 | |
| 미국의 제33대 대통령 | |
| 임기 | 1945년 4월 12일~1953년 1월 20일 |
| 부통령 | 앨번 W. 바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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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프랭클린 D. 루스벨트(제32대) 후임: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제3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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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기 | 1945년 1월 20일~1945년 4월 12일 |
| 대통령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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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헨리 A. 월리스(제33대) 후임: 앨번 W. 바클리(제3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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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상정보 | |
| 출생일 | 1884년 5월 8일 |
| 출생지 | |
| 사망일 | 1972년 12월 26일(88세) |
| 사망지 | |
| 정당 | 민주당 |
| 배우자 | 베스 트루먼 |
| 자녀 | 마거릿 트루먼 |
| 종교 | 침례교 |
| 서명 | |
해리 S. 트루먼(Harry S. Truman, 1884년 5월 8일 ~ 1972년 12월 26일)은 미국의 제34대 부통령(1945년), 제33대 대통령(1945년 4월 12일~1953년)이었다. 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부통령이 된 지 불과 82일 만에 대통령직을 승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항복을 받았고,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쇼와 천황으로 부터 항복을 받았으며, 한국 전쟁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핵공격 명령을 내린 대통령이다. 해리 S.트루먼의 S는 그의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의 이름이 S로 시작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냥 S라고 붙였다.
생애
어린시절
그는 어렸을 적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시력이 나빠져서 사관학교에 가진 못하였지만, 시력 검사표를 외워 미주리 주 소위 방위군에 임관하고 1차대전에 참전하여 포병장교로 프랑스에서 근무하다가 대위로 재대했다.
첫 정치생활
그는 1919년, 베스 트루먼과 결혼하고, 남성복 가게를 열었으나 3년도 못 가 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였다. 그 뒤, 정치계에 투신하여 1922년부터 1934년까지 판사로 봉사하였고, 연방 상원의원의 길을 열었다. 1944년까지 연방 상원의원으로 국방위원장까지 맡았지만 그다지 주목 받거나 활발한 상원의원은 못되고 그저 무난한 편이었다.
부통령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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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통령에서 대통령으로
1945년 4월 12일 트루먼이 부통령이 된지, 83일날,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뇌일혈로 사망하자 대통령이 되었는데, 리틀 보이(Little Boy)라는 별명으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때 개발되어 완성된 원자폭탄이었다. 이것을 과연 일본에 투하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결국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8월9일 나가사키에 각각 투하하여 일본군의 항복을 받아냈지만, 거의 20만명이 사라지거나, 방사능 질병으로 고통을 받았는데 트루먼의 원자탄 투하는 역사의 비판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페어 딜(Fair Deal)이라는 정책을 펼쳤는데 이것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추진했던 뉴딜정책을 연장 확대 한것으로 새계대전이 끝난 뒤의 미국 경제을 안정 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대통령 재임기간
선거일 밤, 그는 자신이 패배했으리라 생각했는데, 다음날 아침, 승리를 알리는 소식에 잠을 깼고, 그 날 시카고트리뷴은 '공화당 후보 듀이, 트루먼에 승리하다'라는 역사적인 오보를 했다. 더글러스 맥아더와는 정치적으로 갈등을 하였으며 그 때문에 아이젠하워를 선택했다는 견해가 있다.[출처 필요]
업적


트루먼의 등장은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신봉했던 국제주의의 종식을 전제로 한 미국 외교정책의 전면적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트루먼은 반소 감정이 매우 강해, 이미 상원의원 시절에 "독일군들과 소련군들이 피가 다 빠질 때까지 싸웠으면 좋겠다"는 독설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그는 국제주의적인 협상과 타협을 비도덕적인 것으로 간주하였으며, 자유세계의 방위를 위해선 소련이라고 하는 '세계적인 깡패'에 대해 십자군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신념의 소유자였다.[출처 필요]
1947년 3월 12일,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행한 연설에서 이른바 트루먼 독트린으로 불리는 선언을 하였다. 그는 "미국의 목적은 한 사람이 독재정치를 하는 공산 제국주의에 대항해 자유민주주의 제도와 영토보전을 위해 투쟁하는 세계의 모든 국민을 원조하는 것"이라고 선언하며 좌익과 우익간의 대립이 심각했던 그리스와 터키에서 공산세력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한 자금 4억 달러를 의회에 요청하였다. 하지만 트루먼 독트린의 실제 이유는, 공산주의 확산을 방관할 시, 유럽과 아시아라는 대형시장을 잃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실례로 미국은 시장으로서의 가치가 큰 유럽을 경제적으로 지원하여, 당시 옛 소련 주도로 벌어지던 공산주의 확산을 막으려고 한 적이 있다.[1][2]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되자 이승만은 트루먼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 한국에 이 정책을 수용하게 함으로써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 사이에 협력을 이끌어내려는 미군정의 정책을 포기하게 하도록 권하였다. 이승만은 '미국 내에서 즉각적인 과도 독립정부를 수립함으로써 공산주의의 진출에 대한 방파제를 구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김구는 '트루먼이 전 세계 자유애호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발송하였다. 김성수는 트루먼에게 찬사를 표하는 무선전보를 보냈다. 장덕수는 '이것은 트루먼에게 큰 불빛이다. 긴 터널의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하였다.[2]
여담
귀신 소동
트루먼은 임기 초기에 책이 날아다니고 밤에 이상한 발자국 소리가 나고 만년필이 저절로 움직이는 등 폴터가이스트 현상에 시달렸다. 이 현상에 화를 참지 못하고 불같이 진노한 트루먼은 백악관의 귀신이 나오던 지역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새로 지으라고 명령했다. 그 뒤로 귀신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1]
그의 미들네임 S에 관한 논란
| “ | 내 이름은 해리슨 영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해리슨에서 온 해리가 내 이름이 되었고, 두 개의 이니셜로 이름을 쓸 수 있도록 S만이 더해졌다. 내 친할아버지의 이름은 앤더슨 시프 트루먼이고 내 외할아버지의 이름은 솔로몬 영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두 이름에 같이 쓰이는 S를 받았다. | ” |
— 트루먼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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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은 미들네임이 없이, S란 이니셜만 있었다. 이름이 아닌 이니셜을 쓰는 것은 미주리 주를 비롯한 미국 남부의 관습이었다.
종종 트루먼은 S가 이니셜이 아니라 완전한 이름이라서 뒤쪽에 붙는 점은 빼야 한다고 농담을 하곤 했다. 그러나 공식 문서와 대통령 문고에선 모두 이름의 S에 이니셜임을 뜻하는 점을 붙여 쓰고 있다. 또한 해리 S. 트루먼 문고가 보유한 여러 시기의 트루먼의 서명들에서도 자신이 직접 S뒤에 점을 붙여 쓴 것은 분명하다.
기타
트루먼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역사상 4번째 암살 위기를 겪었다. 1950년 11월 1일 오후 2시 15분 백악관 공사 중 오스카 코아조와 그라젤리오 토레솔라라는 푸에르토리코 민족주의자가 침입해 영빈관 현관에서 대통령 경호원들과 총격전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토레솔라와 최초로 경호원 1명이 사망했다. 이후에 국회는 트루먼에게 영구적 경호를 인정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퇴임 후
| “ |
솔직히 난 당신을 얕보았습니다. 그리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신 대통령이 된 것이 싫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 누구보다 서구문명을 잘 지켜내셨습니다! |
” |
퇴임 후, 그는 키가 작아서(175cm) 붙은 애칭인 "리틀 맨(little man)"이 아닌, 서방세계를 공산주의로부터 막아낸 거인이란 뜻의 "리틀 빅 맨(little big man, 작은 거인)"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1972년 12월 26일, 향년 88세로 사망했다.
읽어보기
주석
외부 연결
| 제33대 미국 대통령 | ||
|---|---|---|
| 전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1945년 4월 12일 ~ 1953년 1월 20일 | 후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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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4대 미국 부통령 | ||
|---|---|---|
| 전 임 헨리 A. 월리스 |
1945년 1월 20일 ~ 1945년 4월 12일 | 후 임 앨번 W. 바클리 |
| 존 애덤스 · 토머스 제퍼슨 · 에런 버 · 조지 클린턴 · 엘브리지 게리 · 대니얼 D. 톰킨스 · 존 C. 칼훈 · 마틴 밴 뷰런 · 리처드 멘터 존슨 · 존 타일러 · 조지 M. 댈러스 · 밀러드 필모어 · 윌리엄 R. 킹 · 존 C. 브레킨리지 · 해니벌 햄린 · 앤드루 존슨 · 스카일러 콜팩스 · 헨리 윌슨 · 윌리엄 A. 휠러 · 체스터 A. 아서 · 토머스 A. 헨드릭스 · 리바이 P. 모턴 · 애들레이 E. 스티븐슨 · 개릿 A. 호바트 · 시어도어 루스벨트 · 찰스 W. 페어뱅크스 · 제임스 S. 셔먼 · 토머스 R. 마셜 · 캘빈 쿨리지 · 찰스 G. 도스 · 찰스 커티스 · 존 낸스 가너 · 헨리 A. 월리스 · 해리 S. 트루먼 · 앨번 W. 바클리 · 리처드 닉슨 · 린든 B. 존슨 · 휴버트 험프리 · 스피로 애그뉴 · 제럴드 포드 · 넬슨 록펠러 · 월터 먼데일 · 조지 H. W. 부시 · 댄 퀘일 · 앨 고어 · 딕 체니 · 조 바이든 · 마이크 펜스 · 카멀라 해리스 · J. D. 밴스 | ||